젓갈의 발효 과학: 새우젓·멸치액젓은 어떻게 감칠맛의 보물이 되는가

소금에 절인 생선이 어떻게 ‘감칠맛 폭탄’이 될까?

김치찌개 국물이 유난히 깊게 느껴질 때, 나물 무침이 밍밍하지 않고 착 감길 때—그 뒤에는 대개 젓갈이 있다. 소금과 생선(혹은 새우)만 넣고 그저 묻어뒀을 뿐인데, 몇 달이 지나면 원료에는 없던 진한 감칠맛과 향이 생겨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다. 젓갈의 발효는 크게 두 개의 엔진으로 돌아간다. 하나는 원료 자신이 가진 자가소화효소(autolytic enzyme), 다른 하나는 고농도 소금 속에서도 살아남는 호염성(好鹽性) 미생물이다. 이 둘이 단백질을 잘게 쪼개 감칠맛의 정체인 아미노산으로 바꾼다.

이 글에서는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중심으로, 젓갈이 어떤 원리로 숙성되는지, 그 과정에서 감칠맛이 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지를 실제 연구 데이터를 근거로 풀어본다.

1. 젓갈 발효의 두 엔진 — 자가소화효소와 호염성 미생물

젓갈을 담그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자가소화(自家消化)’다. 생선이나 새우의 내장·근육에는 원래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 있다. 살아 있을 때는 소화를 담당하던 이 효소들이, 죽은 뒤에는 자기 자신의 단백질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자가소화다.

여기에 소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금은 부패를 일으키는 잡균을 억제하면서도, 고염 환경에 적응한 호염성 미생물만 골라 살아남게 한다. 즉 소금은 “썩는 것(부패)”과 “익는 것(발효)”의 갈림길을 결정하는 스위치다. 실제 수산 발효식품은 “어류 또는 패류의 근육·내장 등에 염을 첨가하여 자가소화 및 미생물이 분비하는 효소 반응에 의해 숙성시킨 전통 발효식품”으로 정의된다.¹

정리하면 젓갈의 숙성은 다음 순서로 진행된다. 원료의 자가소화효소와 호염성 미생물의 효소가 함께 작용해 커다란 단백질을 잘게 분해하고, 그 결과 유리아미노산과 핵산 분해산물이 생성되며, 이들이 어우러져 특유의 감칠맛이 완성된다.²

2. 새우젓 — 담그는 ‘시기’가 이름과 맛을 결정한다

새우젓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잡은 시기에 따라 이름과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같은 새우라도 언제 담그느냐에 따라 오젓, 육젓, 추젓 등으로 나뉜다. 음력 5월에 담근 것을 오젓, 6월에 담근 것을 육젓, 가을에 담근 것을 추젓이라 부른다. 특히 산란 직전 살이 통통하게 오른 6월 새우로 담근 육젓은 최상품으로 친다.

새우젓 발효의 핵심 변수는 소금 농도다. 소금을 많이 넣으면 자가소화와 미생물 활동이 느려져 천천히 숙성되고, 적게 넣으면 빨리 익지만 변질 위험이 커진다. 연구에 따르면 새우젓의 품질은 원료 새우의 자가소화작용과 발효 미생물의 영향을 함께 받으며, 염 농도를 달리하면 세균과 효모의 분포가 달라져 최종 맛과 품질이 바뀐다.³

새우젓은 주로 김치의 부재료와 음식의 간·감칠맛을 동시에 잡는 데 쓰인다. 돼지고기 수육에 곁들이거나 계란찜·호박볶음의 간을 맞출 때, 마늘·고춧가루 같은 강한 양념 없이도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을 더해주는 것이 새우젓의 힘이다.

3. 멸치액젓 — 18개월 숙성이 만든 ‘아미노산의 바다’

멸치액젓은 젓갈 발효 과학을 수치로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한 연구에서는 부산 기장의 숙성탱크에서 멸치에 천일염 25%를 넣고 20±5℃에서 18개월간 숙성시키며 성분 변화를 추적했다.⁴ 그 결과는 놀랍다.

단백질 분해가 시간에 비례해 진행된다. 멸치육의 가수분해도(단백질이 잘게 쪼개진 정도)는 숙성 12개월까지 67.8%로 급격히 증가했고, 이후 속도가 둔화되어 18개월 후에는 74.6%에 이르렀다. 원료 단백질의 4분의 3가량이 분해된 것이다.⁴

감칠맛 성분이 극적으로 늘어난다. 18개월 숙성한 멸치액젓의 유리아미노산 총량은 무려 9,070.2mg/100ml에 달했다. 그중 감칠맛의 대표 성분인 글루탐산(glutamic acid)이 20.5%로 가장 많았고, 이어 류신(14.2%), 알라닌(14.0%), 라이신(12.2%) 순이었다.⁴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있다. 원료 멸치육의 총아미노산 조성에서는 아스파르트산이 14.6%로 가장 높고 글루탐산은 8.9%에 불과했다. 그런데 발효를 거치면서 **글루탐산의 비율이 20.5%까지 치솟았다.**⁴ 즉 발효는 단순히 단백질을 쪼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칠맛 성분이 상대적으로 풍부해지는 방향으로 재구성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액젓이 “생멸치에는 없던 깊은 맛”을 갖게 되는 과학적 이유다.

4. 감칠맛의 비밀 — 아미노산과 핵산의 ‘상승작용’

젓갈의 감칠맛이 유독 강렬한 데는 또 하나의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바로 **감칠맛 상승작용(synergy)**이다.

감칠맛 성분은 크게 두 계열로 나뉜다. 아미노산 계열인 글루탐산과, 핵산 계열인 **이노신산(IMP)·구아닐산(GMP)**이다. 이 둘을 따로 쓸 때보다 함께 쓸 때 감칠맛이 몇 배로 증폭되는 현상이 잘 알려져 있다.⁵

멸치젓은 바로 이 두 가지를 자체적으로 모두 갖추고 있다.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자료에 따르면 “멸치젓은 자가소화분해효소와 미생물에 의한 발효작용으로 생긴 유리아미노산과 핵산 분해산물의 상승작용으로 특유의 감칠맛이 난다.”² 즉 젓갈 한 스푼 안에는 글루탐산(아미노산)과 핵산 분해산물이 동시에 들어 있어, 인공 조미료 없이도 강력한 감칠맛 시너지가 자연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5. 영양과 주의점 — 칼슘의 보고, 그러나 나트륨은 조심

멸치젓은 영양 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국립농업과학원 자료 기준 멸치젓 100g에는 칼슘 592mg(1일 권장량의 84.6%), 인 348mg, 철 5.5mg이 들어 있어, 채소 위주 식단에서 부족하기 쉬운 무기질을 보충해준다.² 단백질도 14.1g 함유되어 있다.

다만 반드시 유의할 점이 있다. 나트륨 함량이 매우 높다. 같은 자료에서 멸치젓 100g의 나트륨은 11,826mg으로, 1일 기준치의 약 591%에 달한다.² 젓갈은 어디까지나 소량을 조미료처럼 사용하는 식품이며, 고혈압이나 신장 질환 등으로 나트륨 섭취를 조절해야 하는 경우에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마치며 — 소금과 시간이 빚은 ‘느린 과학’

젓갈은 언뜻 가장 원시적인 저장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원료가 스스로를 분해하는 자가소화효소, 소금이 골라낸 호염성 미생물, 시간이 쌓아 올린 아미노산과 핵산의 상승작용—이 모든 것이 조용히 맞물려 감칠맛의 보물을 만들어낸다.

새우젓이 담그는 ‘시기’로 개성을 얻고, 멸치액젓이 18개월의 ‘시간’으로 아미노산의 바다가 되듯, 젓갈은 결국 소금과 시간이 함께 쓴 느린 과학의 결정체인 셈이다.

이 글의 영양·성분 정보는 공개된 연구 자료와 공공기관 데이터에 근거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특정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젓갈류는 나트륨 함량이 매우 높으므로 섭취량 조절이 필요하며, 건강상 우려가 있는 경우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1. “발효수산물로부터 분리된 호염성 미생물의 특성 분석”, 『Food Engineering Progress』 25(2) — 수산 발효식품의 정의(염 첨가·자가소화·미생물 효소 반응). https://www.foodengprog.org/archive/view_article?pid=fep-25-2-110
  2.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FSIS), “김장철 많이 사용되는 수산식품 ‘멸치젓'” — 자가소화분해효소·핵산 상승작용에 의한 감칠맛, 영양성분표(칼슘 592mg, 나트륨 11,826mg/100g 등), 담그는 법·소금 비율. https://www.fsis.go.kr/front/api/totalView.do?cnts_id=16715
  3. “염 농도를 달리한 새우젓 발효 중 미생물 변화”, KISTI — 새우젓 품질에 대한 자가소화작용·발효 미생물·염 농도의 영향. https://accesson.kisti.re.kr/archive/pdfDown.do?arti_id=ATN0027826415
  4. 조영제 외, “숙성기간에 따른 멸치액젓의 성분변화” — 18개월 숙성, 가수분해도 74.6%, 유리아미노산 총량 9,070.2mg/100ml, 글루탐산 20.5% 등. https://scienceon.kisti.re.kr/srch/selectPORSrchArticle.do?cn=JAKO200024839404151
  5. 감칠맛 상승작용(글루탐산+이노신산/구아닐산) 관련 자료 — 아미노산계와 핵산계 감칠맛 성분의 시너지. IBRIC 동향 「인간의 미각과 제5의 맛인 감칠맛」 등.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