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도 파도 없이, 어떻게 그 깊은 맛이 날까?
한 그릇의 사찰음식을 처음 맛본 사람들은 종종 같은 질문을 한다. “마늘도, 파도, 심지어 양파도 안 들어갔다는데, 대체 이 감칠맛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정답은 **장(醬)**에 있다. 마늘과 파가 빠진 자리를 된장과 간장, 그리고 세월이 만든 발효의 힘이 대신 채운다. 사찰음식이 “심심하지만 깊다”는 역설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자극적인 향신 채소 없이도 혀에 오래 남는 맛, 그 중심에는 스님들이 손수 담그는 장류가 있다.
이 글에서는 사찰음식에서 왜 마늘과 파를 쓰지 않는지(오신채 금기의 뿌리), 그 빈자리를 장류가 어떻게 메우는지, 그리고 사찰 장이 일반 가정의 장과 무엇이 다른지를 문헌과 실제 사례를 근거로 풀어본다.

1. 먼저 알아야 할 것 — ‘오신채(五辛菜)’란 무엇인가
사찰음식을 이해하려면 오신채라는 개념부터 짚어야 한다. 오신채는 수행자들이 먹지 않는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말하며, 오훈채(五葷菜)라고도 부른다.
다섯 가지는 마늘, 파(양파 포함), 부추, 달래, 그리고 흥거(興渠)다. 흥거는 인도·중앙아시아 지역의 향신 채소(아사푀티다, asafoetida)로 한국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고추(고춧가루)는 오신채에 포함되지 않는다. 매운 기운이 몸과 마음에 오래 남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¹
그렇다면 왜 이 다섯 가지를 금할까? 그 근거는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인 『능엄경(楞嚴經)』 제8권에 명확히 남아 있다.
“아난아, 일체 중생은 독한 것을 먹기 때문에 죽나니,
모든 중생들이 삼매에 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오신채를 끊어야 하느니라.
오신채는 익혀 먹으면 음란한 마음을 발생시키고,
날 것으로 먹으면 성내는 마음이 더해지나니…”¹
정리하면 금기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행의 방해 — 자극적인 성분이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음욕과 성냄을 일으킨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공동체 배려 — 강한 냄새가 함께 수행하는 대중에게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 마늘을 먹은 한 비구의 입 냄새로 법회 대중이 힘들어하자 계율로 정했다는 일화도 전한다.¹
이 지점이 중요하다. 오신채를 뺀다는 것은 단순히 재료 몇 가지를 생략하는 문제가 아니라, 맛을 내는 핵심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다. 마늘·파·양파는 대부분의 한식에서 감칠맛과 향의 기본기 역할을 한다. 이것들이 없다면,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여기서 장류의 존재감이 결정적으로 커진다.
2. 오신채의 빈자리를 채우는 ‘두 개의 축’ — 장과 천연 감칠맛
『능엄경』을 해설한 자료에서도 사찰이 오신채를 대신해 사용해 온 재료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바로 다시마·들깨·방앗잎·제피(초피)가루·버섯 등이다. 이 재료들은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움을 더하며, 청정하고 유연하여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만든다”고 설명된다.¹
사찰음식의 맛은 대략 두 개의 축으로 완성된다.
첫째 축은 장류(된장·간장·고추장·막장) 다. 콩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며 글루탐산 같은 감칠맛 성분이 풍부하게 생성된다. 마늘·파가 주는 강한 향 대신, 장은 은은하면서도 깊게 스며드는 ‘바탕맛’을 만든다.
둘째 축은 천연 감칠맛 재료다. 특히 다시마(글루탐산)와 표고버섯(구아닐산)은 서로 만나면 감칠맛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재료를 함께 우린 채수(菜水)는 멸치육수 없이도 국물 요리의 바탕을 잡아준다.
즉 사찰음식은 ‘빼기’의 요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발효(장)와 천연 재료(채수)라는 두 축으로 감칠맛을 재설계한 정교한 더하기의 결과다.
3. 사찰의 장은 무엇이 다른가 — ‘수행’이 곧 제조 공정
사찰 장류가 특별한 이유는 성분 자체보다 담그는 태도와 과정에 있다. ‘요리하는 수행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정관스님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관스님은 수행의 철학이 담긴 음식 세계를 통해 한국 발효문화의 정신적·생태적·공동체적 가치를 알려온 인물로, 2025년에도 파리 한국문화원과 영국 브리스톨에서 종가 명인, 현지 셰프와 협업해 사찰 발효 음식을 선보인 바 있다.²
사찰 장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신채가 처음부터 배제된다. 일반 가정에서 장을 활용한 양념장에는 마늘·파가 흔히 들어가지만, 사찰의 양념장은 애초에 이것들을 넣지 않는다. 대신 제피가루, 방앗잎, 들깨가루, 버섯가루 같은 향을 더한다.
둘째, 제철과 자연의 순환을 따른다.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고, 정월에 장을 담가 백일가량 발효시킨 뒤 된장과 간장으로 가르는 과정 전체가 계절의 흐름에 맞춰 이루어진다. 절에서는 이 장 담그기와 장 가르기 자체를 수행의 일부로 여긴다.
셋째, 첨가물 없이 시간에 의존한다. 인공 감미료나 화학 조미료 없이 오로지 콩·소금·물, 그리고 시간이 재료의 전부다. 이 점은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²
4. 실전 — 오신채 없이 장으로 맛내는 원리
이론을 실제 조리로 옮기면 원리가 더 분명해진다. 사찰음식에서 장을 활용하는 방식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국물 요리(된장국·장국)에서는 마늘·멸치 대신 다시마와 표고버섯을 우린 채수를 바탕으로 삼고, 여기에 된장을 풀어 감칠맛을 겹으로 쌓는다. 나물 무침에서는 파·마늘 양념 대신 집간장(국간장)과 들기름, 통깨, 들깨가루로 고소함과 간을 맞춘다. 조림이나 장아찌에서는 간장이 짠맛·감칠맛·색을 동시에 담당하며, 제피가루나 방앗잎으로 향의 포인트를 준다. 매운맛이 필요할 때는 오신채가 아닌 고추·고춧가루·고추장을 쓰므로 사찰음식에서도 얼큰한 요리가 가능하다.
핵심 원리는 하나다. 강한 향(마늘·파)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발효로 얻은 은은한 감칠맛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찰음식은 처음엔 심심해도 먹을수록 여운이 길다.
마치며 — ‘비움’이 만든 맛의 완성
사찰음식의 장류는 결국 하나의 역설을 보여준다. 가장 강력한 맛의 재료(마늘·파)를 비웠기 때문에, 오히려 발효라는 더 깊고 조용한 맛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신채를 금하는 계율은 처음엔 수행과 공동체를 위한 제약이었지만, 그 제약이 도리어 한국 발효 음식의 정수를 응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마늘도 파도 없이 완성되는 그 깊은 맛의 비밀은, 결국 콩과 소금과 시간이 만든 ‘장’에 있었던 셈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발효 식품과 재료의 특성은 일반적인 정보와 문헌·전통에 근거한 것으로, 특정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장류는 나트륨 함량이 높으므로 섭취량 조절이 필요하며, 건강상의 우려가 있는 경우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 이정우(군법사), “[청년을 위한 불교기초강의] <66> 불교에서 금하는 음식 있나요”, 『불교신문』 3601호(2020.7.25) — 오신채의 정의, 『능엄경』 제8권 원문 인용, 오신채 대체 재료(다시마·들깨·방앗잎·제피가루·버섯).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Amp.html?idxno=207244
- “파리에서 브리스톨까지… 한국 ‘장 담그기 문화’, 유럽 미식 무대에 공식…”, 『푸드아이콘』(2025) — 정관스님 사찰 음식, 종가 장,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관련. https://www.foodi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46
-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자료 — 사찰음식과 오신채. https://blog.naver.com/templestaygo/223889637589
- 다시마·표고버섯의 감칠맛 상승작용(글루탐산+구아닐산·이노신산) 관련 천연조미료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