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셰프들이 주목하는 한국 장류: 미소와 고추장의 비교 분석

세계 미식가의 식탁에 오른 두 개의 발효 페이스트

발효 콩 페이스트는 동아시아 요리의 뿌리다. 그중 일본의 미소(味噌) 와 한국의 고추장은 세계 셰프들이 가장 즐겨 찾는 발효 조미료로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소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서구 파인 다이닝의 언어로 자리 잡았고, 고추장은 최근 ‘K-소스’의 대표주자로 무섭게 부상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둘이 비슷해 보이지만 재료·발효 방식·맛의 구조·쓰임새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셰프들은 왜 이 두 장(醬)에 주목할까? 이 글에서는 미소와 고추장을 재료·발효 과학·글로벌 활용 측면에서 비교하고, 두 장류가 세계 미식 지형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근거와 함께 짚어본다.

재료와 발효 방식: 근본부터 다른 두 갈래

먼저 미소와 고추장은 출발점이 다르다.

미소는 삶은 콩에 누룩곰팡이(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 Aspergillus oryzae)를 배양한 코지(麴) 를 더해 발효시킨다. 이때 쌀을 쓰면 쌀미소, 보리를 쓰면 보리미소가 되며, 코지의 종류와 발효 기간에 따라 흰색(단맛·짧은 숙성)부터 붉은색·짙은 갈색(진한맛·긴 숙성)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핵심은 곰팡이(코지) 주도 발효라는 점이다.

고추장은 전혀 다른 조합이다. 메줏가루(발효시킨 콩), 고춧가루, 찹쌀(또는 멥쌀) 등 곡물, 엿기름, 소금이 어우러진다. 곡물의 전분이 엿기름의 당화 효소로 분해되어 단맛을 내고, 메줏가루의 단백질 분해로 감칠맛이 생기며, 고춧가루가 매운맛과 붉은색을 더한다. 즉 고추장은 애초에 매운맛·단맛·감칠맛·짠맛이 한 그릇에 응축된 복합 조미료다.

여기서 한 가지 자주 혼동되는 점을 짚자면, 서구권에서 미소와 직접 비교되는 한국 장은 사실 된장에 가깝다. 된장과 미소는 둘 다 콩 발효 페이스트지만, 한국 된장은 전통적으로 콩만으로 메주를 띄워 자연 발효시키는 반면, 미소는 콩에 쌀·보리를 더해 코지로 발효시킨다는 차이가 있다. 반면 고추장은 미소·된장에는 없는 고추(캡사이신)와 곡물의 단맛이라는 뚜렷한 개성을 지녀, 오히려 서구 셰프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맛의 도구’로 받아들여진다.

맛의 구조 비교: ‘단일한 깊이’ vs ‘복합적 강렬함

두 장류의 맛 구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미소는 감칠맛(우마미) 중심의 은은하고 깔끔한 깊이를 낸다. 짠맛과 감칠맛이 주축이라 국물, 소스, 마리네이드의 ‘베이스’로 쓰기 좋다. 다만 미소는 오래 끓이면 향과 풍미가 날아가기 쉬워, 요리 마지막에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추장은 매운맛·단맛·감칠맛·짠맛이 동시에 몰려오는 복합적이고 강렬한 맛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소스에 가깝다. 한 스푼만으로 요리에 색(붉은색), 열감(매운맛), 단맛, 깊이(발효 감칠맛)를 동시에 부여할 수 있어, 셰프 입장에서는 ‘만능 카드’와 같다.

구분미소 (일본)고추장 (한국)
주재료콩 + 쌀/보리 코지메줏가루 + 고춧가루 + 곡물 + 엿기름
핵심 미생물누룩곰팡이(A. oryzae) 주도메주 발효균 + 곡물 당화
맛의 축감칠맛·짠맛 (은은)매운맛·단맛·감칠맛·짠맛 (강렬)
흰색~짙은 갈색붉은색
주 용도국물·소스 베이스소스·양념·딥 (그 자체로 완성형)

글로벌 셰프들이 고추장에 주목하는 이유

미소는 이미 세계 미식의 ‘고전’이 되었지만, 최근 파인 다이닝의 새로운 총아는 고추장이다. 그 배경에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

세계적인 프렌치 셰프 장-조지 봉제리슈텐(Jean-Georges Vongerichten) —미슐랭 스타를 18년간 유지하고 전 세계 64개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은 한 인터뷰에서 “매운맛 유행 덕에 한국의 간장·식초·된장·고추장이 셰프들의 필수품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음식의 80%에 고추가 사용된다. 매운맛이 입맛을 돋워준다”며, 자신의 메뉴에 한국 간장을 쓴 생선 버터구이 등을 선보인다고 전했다.¹ 뉴욕 미식계에 한국 식자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그의 증언은, 고추장을 비롯한 한국 장류가 서구 최정상 주방의 실전 재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셰프들이 고추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복합성 때문이다. 미국 시장을 휩쓴 여러 핫소스가 대체로 ‘매운맛 한 가지’에 집중하는 반면, 고추장은 매운맛에 발효 감칠맛과 단맛이 겹쳐 훨씬 입체적인 풍미를 낸다. 앞서 이 시리즈에서 다룬 것처럼 CJ제일제당의 K-소스 팀이 고추장을 ‘찍어 먹는 소스’로 재해석하고, 트레이더조가 고추장 디저트를 ‘올해의 레시피’로 선정한 것도 이 복합적 매력 덕분이다.

세계 규격이 인정한 ‘Gochujang’이라는 고유명사

고추장의 위상은 국제 규격에서도 확인된다. 2020년 9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는 고추장을 세계규격으로 채택했다. 이는 2001년 김치, 2015년 인삼에 이어 한국 식품으로는 세 번째다.²

이 채택의 의미는 상징적이다. 고추장이 ‘red pepper paste’나 ‘chili sauce’가 아니라 한국어 발음 그대로 ‘Gochujang’ 이라는 고유명사로 국제 공인 기준에 오른 것이다. 이는 김치(Kimchi)가 그랬듯, 고추장을 다른 매운 소스와 구별되는 독자적 발효식품으로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된장은 2009년 아시아 지역규격으로 채택된 바 있다.

수치로도 성장세가 뚜렷하다. 고추장은 2019년 기준 미국·중국·일본 등 약 106개국에 연간 1만 7,686톤, 3,767만 달러(약 431억 원) 규모로 수출되어, 10년 전보다 약 2배 이상 성장했다.² 미소가 오랜 세월 쌓아온 글로벌 인지도를, 고추장이 K-콘텐츠 열풍을 타고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전 활용: 셰프처럼 두 장류 쓰기

두 장류의 성격이 다른 만큼, 활용법도 다르다. 미소는 국물 요리, 생선·채소 마리네이드, 드레싱, 디저트(미소 캐러멜 등)의 은은한 감칠맛 베이스로 쓰기 좋고, 열을 오래 가하지 않는 것이 요령이다. 고추장은 글레이즈(고기·생선에 발라 굽기), 비네그레트, 버터에 섞은 ‘고추장 버터’, 딥 소스 등 매운맛과 단맛·감칠맛을 한 번에 더하고 싶을 때 강력하다. 서구 셰프들은 고추장을 마요네즈·버터·꿀 같은 지방·단맛 재료와 섞어 매운맛을 부드럽게 다듬는 방식을 즐겨 쓴다.

알아두면 좋은 점

두 장류 모두 발효 조미료인 만큼 나트륨 함량이 상당하므로, 요리에 쓸 때는 소금 사용량을 함께 조절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이 글에서 언급한 수출·시장 관련 수치는 자료 발표 시점(2019~2020년 기준)의 데이터로, 이후 규모가 더 커졌을 가능성이 크다. 최신 통계가 필요하다면 관세청 수출입 통계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하다.

본 글의 영양 관련 내용은 특정 질병의 예방·치료 효과를 주장하지 않으며, 나트륨 섭취는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며: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두 발효의 명작

미소와 고추장은 같은 ‘발효 콩 페이스트’라는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곰팡이 발효로 은은한 감칠맛을 완성한 미소와, 고추·곡물·메주가 어우러져 복합적 강렬함을 빚어낸 고추장은 전혀 다른 미식적 정체성을 갖는다. 미소가 세계 미식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길을, 고추장은 CODEX 세계규격과 글로벌 셰프들의 손끝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걸어가고 있다. 두 장류의 비교는 결국, 동아시아 발효 문화가 얼마나 다채롭게 세계인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窓)이라 할 만하다.


참고문헌

  1. 윤원섭, “트럼프도 찾는 미슐랭 스타 셰프…’고추장·된장으로 입맛 돋우죠’,” 『매일경제』, https://m.mk.co.kr/amp/10953465
  2. 전형, “Gochujang(고추장), 세계규격이 되다! — 제43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세계규격 채택,” 『정책브리핑』(대한민국 정부), 2020-10-22,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78855
  3. “핫한 식문화 콘텐츠를 이끄는 K소스의 대명사 고추장,” 『통상신문』, https://tongsangnews.kr/webzine/1642301/sub2_3.html
  4. “한국 된장 일본 미소 차이 — 맛과 영양, 사용법 비교,”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nieieiei/224265217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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