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메주, 다른 그릇… 맛이 달라지는 이유
똑같은 메주와 소금물로 장을 담가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맛과 품질이 달라진다. 옛 어른들이 “장맛은 장독에서 난다”고 했던 말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실제 과학 연구로 뒷받침되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량 생산 현장에서는 위생적이고 관리가 편한 스테인리스 탱크가 널리 쓰인다. 반면 전통 장은 여전히 흙으로 빚은 옹기(항아리)에서 익는다. 이 두 그릇은 단순히 재질만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미생물의 환경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글에서는 옹기 발효와 스테인리스 탱크 발효가 미생물학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차이가 장맛과 건강 기능성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연구 근거와 함께 살펴본다.

결정적 차이의 핵심: ‘숨 쉬는 그릇’ vs ‘밀폐된 그릇’
두 용기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다공성(porosity), 즉 미세한 구멍의 유무다.
옹기는 흙을 구워 만드는 과정에서 태토 속 유기물이 타면서 무수히 많은 미세 기공이 형성된다. 이 미세한 구멍들은 액체는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기체(공기·수분)는 통과시키는 독특한 성질을 갖는다. 흔히 “옹기가 숨을 쉰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흙의 배합 비율에 따라 옹기의 기공률을 조절하면 간장 발효 품질이 달라진다는 연구도 보고되었다(Chung 등, 2006).¹
반면 스테인리스강과 유리는 비다공성(non-porous) 표면을 가진다. 즉 기체가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스테인리스 탱크는 내부가 밀폐된 환경에 가까워지고, 세척과 살균이 쉬워 세균 오염 위험이 낮다는 위생상의 큰 장점이 있다. 대량 생산에서 스테인리스가 표준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이 ‘통기성의 차이’가 곧 두 발효 방식의 미생물학적 분기점이다.
미생물학적 관점: 산소와 호기성 발효의 차이
장류 발효를 주도하는 대표 미생물은 바실러스(Bacillus)속 세균이다. 바실러스균은 호기성(공기를 좋아하는) 성질이 강해, 산소가 원활히 공급될수록 단백질 분해 효소(프로테아제)를 활발히 만들어낸다. 이 효소가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쪼개면서 감칠맛(글루탐산 등)이 생성된다.
옹기는 미세 기공을 통해 외부 공기가 서서히 안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내부에서 호기성 미생물의 활동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산소가 꾸준히 공급되면 바실러스균과 유익한 효모의 대사가 촉진되고, 이는 감칠맛 성분과 향기 물질의 생성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스테인리스·유리처럼 밀폐된 용기에서는 산소 유입이 제한되어 상대적으로 혐기적(공기가 적은) 환경으로 기울기 쉽다. 이 경우 발효를 주도하는 미생물 군집의 구성이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최종 산물의 맛 프로파일도 달라진다.
또한 옹기의 통기성은 발효 중 생기는 수분과 이산화탄소를 조금씩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도 한다. 이는 과도한 습기로 인한 잡균 번식을 억제하고, 발효물이 알맞게 농축되도록 돕는다.
실험이 증명한 결과: 여러 용기 비교 연구들
용기의 종류가 발효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한 실험으로 확인되어 왔다.
가장 직접적인 근거는 이수연 등(2022)의 연구다. 연구팀은 간장을 20L 크기의 옹기(무유옹기·시유옹기)와 일반 용기(도자기·스테인리스강·유리병) 에서 각각 발효시키며 품질 특성과 건강 기능성을 비교했다.² 이처럼 동일 조건에서 용기만 달리하는 실험을 통해, 옹기 발효 간장이 항산화 등 건강 기능성 지표에서 차별화된 결과를 보인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김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정지강 등(2011)이 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Food Science and Technology에 발표한 연구는 옹기에서 발효한 김치가 다른 용기에서 발효한 것보다 품질과 기능성이 향상된다는 것을 보였다(제목부터 “Increased quality and functionality of Kimchi when fermented in Korean earthenware (Onggi)”).³
이 밖에도 된장(Yoo 등, 2001), 고추장(Chung 등, 2005), 멸치간장(Chung 등, 2004) 등 다양한 발효식품에서 “용기가 발효 중 품질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축적되어 왔다. 즉 옹기의 효과는 특정 식품에 국한된 우연이 아니라, 여러 발효식품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옹기의 또 다른 특성들: 원적외선과 빛 차단
옹기의 장점은 통기성만이 아니다. 흙 소재 자체가 방출하는 원적외선은 발효를 돕는 요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또한 불투명한 옹기 벽은 빛을 차단해, 빛에 민감한 성분의 산화·변질을 막아준다. 반면 투명한 유리 용기는 빛을 그대로 통과시켜 이 점에서 불리하다.
옹기 벽면의 미세 기공은 발효를 거치며 물리적 특성이 변하기도 한다(Seo 등, 2006). 오랜 세월 장을 담아온 ‘씨간장 항아리’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데에는, 그 그릇 자체가 발효에 최적화된 상태로 길들여졌다는 과학적 배경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스테인리스 탱크는 나쁜 것일까?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스테인리스 탱크가 옹기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다른 도구다.
스테인리스 탱크의 강점은 명확하다. 비다공성 표면 덕분에 세척·살균이 쉬워 오염 위험이 낮고, 온도 조절이 정밀하며, 대용량 생산과 품질 균일화에 유리하다. 발효 온도와 조건을 일관되게 제어할 수 있어, 매번 같은 맛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수출과 산업화가 중요한 현대 식품 시장에서 결정적인 장점이다.
전통 옹기는 반대로 개성 있고 깊은 풍미, 그리고 앞서 살펴본 기능성 측면에서 강점을 갖지만, 관리가 까다롭고 품질 편차가 클 수 있으며 대량 생산에 한계가 있다. 실제로 전통 된장은 “담글 때마다 품질이 달라진다”는 특성이 오랜 과제로 지적되어 왔다.
결국 두 방식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의 깊이(옹기)와 산업적 일관성(스테인리스) 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스테인리스 탱크의 위생·제어 장점을 살리면서 옹기의 발효 특성을 재현하려는 연구, 옹기의 기공률을 표준화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알아두면 좋은 점
여기서 소개한 연구들은 대체로 실험실 규모의 비교이거나 특정 조건에서의 결과이므로, “옹기 장이 무조건 더 건강하다”는 식의 단정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옹기 발효라도 관리가 부실하면 잡균·곰팡이 오염 위험이 있고, 스테인리스 발효라도 조건을 잘 설계하면 우수한 품질을 낼 수 있다. 그릇의 종류만큼이나 메주의 품질, 소금 농도, 발효 온도와 기간, 위생 관리가 최종 결과를 좌우한다.
본 글의 건강 기능성 관련 내용은 공개된 연구 자료에 기반한 것으로, 특정 질병의 예방·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마치며: 그릇이 곧 미생물의 집이다
전통 항아리 발효와 스테인리스 탱크 발효의 차이는 결국 미생물에게 어떤 집을 지어주느냐의 차이다. 옹기는 숨 쉬는 미세 기공으로 산소와 수분을 조절해 호기성 발효 미생물이 살기 좋은 역동적 환경을 만들고, 스테인리스는 밀폐되고 청결한 통제된 환경을 제공한다. 여러 비교 연구가 보여주듯, 이 환경의 차이는 미생물 군집과 대사 산물, 나아가 맛과 기능성의 차이로 이어진다. “장맛은 장독에서 난다”는 옛말이, 오늘날 미생물학의 언어로 다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참고문헌
- Chung SK, Lee KS, Lee DS, “Fermentation of kanjang, Korean soy sauce, in porosity-controlled earthenwares with changing the mixing ratio of raw soils,” Korean J Food Sci Technol, 38, 215-221 (2006)
- 이수연 외, “옹기에서 발효된 간장의 품질 및 건강 기능성 증진 효과,”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Korean J Food Preserv)』 29권 3호, 2022, https://www.ekosfop.or.kr/archive/view_article?pid=kjfp-29-3-407
- Jeong JK, Kim YW, Choi HS, Lee DS, Kang SA, Park KY, “Increased quality and functionality of Kimchi when fermented in Korean earthenware (Onggi),” Int J Food Sci Technol, 46, 2015-2021 (2011), https://doi.org/10.1111/j.1365-2621.2011.02710.x
- Yoo SM, Kim JS, Shin DH, “Quality changes of traditional Doenjang fermented in different vessels,” J Korean Soc Agric Chem Biotechnol, 44, 230-234 (2001)
- Chung SK, Kim YS, Lee DS, “Effects of vessel on the quality changes during fermentation of Kochujang,” Korean J Food Preserv, 12, 292-298 (2005)
- Seo KH, Yun JH, Chung SK, Park WP, Lee DS, “Physical properties of Korean earthenware containers affected by soy sauce fermentation use,” Food Sci Biotechnol, 15, 168-172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