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염 시대의 전통 장류: 건강을 생각한 현대적 장 담그기

“짜야 안 상한다”는 오래된 믿음, 정말일까?

전통 장류는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소금을 아낌없이 넣었다. 재래식 된장의 염도는 보통 15~20%, 간장은 더 높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소금은 부패를 막는 유일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나트륨 권장량(WHO 기준 2,000mg, 소금 약 5g)을 훌쩍 넘기기 쉬운 오늘날, 이 ‘짠 장’은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금을 줄이면 장이 상하거나 맛이 없어질까? 놀랍게도 최근 연구들은 “꼭 그렇지는 않다” 는 답을 내놓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저염 장류를 둘러싼 과학적 근거와, 집에서 건강을 생각하며 장을 담글 때 알아두면 좋은 현대적 접근법을 함께 정리한다.

핵심 연구: 소금 절반으로 줄여도 맛은 더 좋았다

가장 주목할 만한 연구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발효식품과 김소영 박사팀의 실험이다. 연구팀은 된장을 네 가지 염도(4%·8%·15%·20%)로 제조한 뒤 12개월 동안 맛·세균수·pH 변화를 추적했다.¹

결과는 통념을 뒤집었다. 염도 8%짜리 저염 된장의 맛이 가장 뛰어났던 것이다. 이 된장은 쓴맛과 떫은맛이 적었고, 신맛은 약했으며, 감칠맛은 오히려 높았다. 재래식 된장(15~20%)의 절반 이하 염도인데도 맛의 완성도가 더 높았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흔히 “소금을 줄이면 잡균이 번식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이 연구에서 된장의 미생물 수는 염도와 상관없이 12개월 동안 g당 1억~10억 마리 수준으로 엇비슷했다. 발효를 주도하는 바실러스균이 중심이었고, 염도 8% 정도면 유해균 억제에도 문제가 없어 안전하면서 맛있는 저염 된장 제조가 가능하다고 연구팀은 추정했다.¹

즉, 전통적으로 ‘더 많이’ 넣던 소금 중 상당 부분은 발효의 필수 조건이라기보다 과잉 안전장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왜 소금을 줄이면 감칠맛이 살아날까

이 현상에는 발효 과학이 숨어 있다. 소금 농도가 너무 높으면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아미노산)을 만드는 미생물과 효소의 활동이 억제된다. 반대로 염도를 적절히 낮추면 바실러스균의 단백질 분해 효소(프로테아제)가 더 활발히 작동해 콩 단백질을 글루탐산 같은 감칠맛 아미노산으로 더 잘 바꾼다.

다만 여기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저염 된장의 이화학적 특성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염도가 낮을수록 발효는 빨라지지만 그만큼 적정 발효기간을 넘기면 과숙되거나 변질 위험이 커진다. 실제로 적정 발효기간은 염도 8%에서 2~11주, 10%에서 3~12주, 12%에서 6~14주, 14%에서 9~15주로, **소금이 적을수록 발효는 빠르고 ‘먹기 좋은 시기’는 짧아진다.**² 저염 장은 맛의 정점이 빨리 오는 만큼, 그 시점을 놓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저염 장, 어떻게 담글까: 현대적 접근 세 가지

집에서 건강을 생각하며 장을 담그려는 사람을 위해, 연구에 근거한 몇 가지 현실적인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금을 무작정 줄이기보다 ‘염도 8~10% 구간’을 노린다. 국립농업과학원 연구가 보여주듯 8% 부근은 맛과 안전성의 균형점이다. 다만 저염일수록 발효가 빨라지므로, 재래식보다 짧은 발효기간과 더 철저한 저온 보관(가급적 냉장·저온)이 필요하다. 담근 뒤 방치하지 말고 상태를 자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부재료로 저염의 빈자리를 채운다. 저염 마늘된장의 숙성 특성을 다룬 연구(조계만 등, 2014)를 비롯해, 마늘·감초·겨자·키토산 등 항균·풍미 재료를 더해 소금을 줄이면서도 저장성과 맛을 보완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³ 표고버섯·다시마 같은 감칠맛 재료를 함께 넣으면 소금을 줄여도 맛의 깊이를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완성된 장을 ‘쓰는 방식’에서 나트륨을 조절한다. 사실 장을 담글 때의 염도만큼 중요한 것이 조리 단계다. 된장찌개 한 그릇의 실제 나트륨은 된장 100g의 수치보다 훨씬 낮은데, 이는 사용량과 국물 양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육수(다시마·표고)로 감칠맛을 끌어올려 장을 덜 넣거나, 칼륨이 풍부한 감자·시금치·버섯 등과 함께 조리하면 나트륨 배출을 도울 수 있다.

균형 잡힌 시각: 발효 장의 ‘소금’은 다르게 볼 여지도

다만 장류의 나트륨을 무조건 줄여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데 대해 신중론도 있다. 일부 전문가와 연구는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생리활성 물질—혈압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진 ACE 저해 펩타이드, 항산화·항암 관련 성분 등—의 존재를 근거로, 발효식품 속 소금이 일반 소금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된장은 항암·면역 증진·혈압 강하·고지혈증 및 당뇨 개선 등의 효과가 여러 연구에서 보고되어 왔다.¹

또한 발효식품 자체가 장내 유익균과 칼륨을 통해 나트륨 배출과 혈관 기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따라서 ‘저염 장’의 핵심은 소금을 극단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발효의 이점은 살리면서 과잉 나트륨만 덜어내는 균형 찾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알아두면 좋은 주의사항

저염 장 담그기에서 가장 조심할 점은 안전 관리다. 소금을 줄이면 발효가 빨라지고 잡균·곰팡이 위험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으므로, 항아리·도구 소독을 철저히 하고, 저온 보관을 지키며, 검은색·푸른색 곰팡이가 피거나 이상한 냄새가 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가정에서 처음 저염 장에 도전한다면 극단적 저염(4% 이하)보다 8~10% 구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본 글의 건강 관련 내용은 공개된 연구 자료에 기반한 것으로 특정 질병의 예방·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장류는 여전히 나트륨 함량이 높은 식품이므로 개인의 건강 상태(고혈압·신장질환 등)에 따라 섭취량을 조절하고, 필요 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마치며: 전통과 건강, 둘 다 지키는 길

저염 시대의 장 담그기는 전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오늘의 건강 기준에 맞게 다시 해석하는 일이다. 국립농업과학원 연구가 보여주듯, 소금을 절반으로 줄여도 맛과 안전성을 지킬 수 있고 오히려 감칠맛이 살아날 수도 있다. 핵심은 적정 염도(8~10%)와 발효 관리, 그리고 부재료와 조리법의 지혜다. 조상들이 소금으로 지켜온 발효의 과학을, 이제는 조금 덜 짜게, 그러나 더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참고문헌

  1. 김소영 외(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발효식품과), “다양한 염도에서 제조한 된장의 장기 숙성 시 품질변화,”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 기사 정리: “소금 절반으로 줄이니 된장맛 더 환상이네,” 『오마이뉴스』, 2017-01-06,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mp.aspx?CNTN_CD=A0002277164
  2. 이주연·목철균, “저염 된장 발효 중 이화학적 특성 변화,” 『Food Engineering Progress』 14권 2호, 2010, https://www.foodengprog.org/download/download_pdf?pid=fep-14-2-153
  3. 조계만 외, “저염 마늘된장의 숙성기간에 따른 품질특성,”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 21권 5호, 2014, https://www.ekosfop.or.kr/archive/view_article?pid=kjfp-21-5-627
  4. 임상일·송성모, “감초·겨자·키토산 첨가 저염 된장의 발효 특성,” 『Korean J Food Sci Technol』 42권, 2010 (위 3번 문헌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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