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치와 장류의 만남: 전통 김치 속 발효 시너지

김치 한 포기에 담긴 ‘두 번의 발효’

김장철이 되면 배추를 절이고, 고춧가루를 개고, 젓갈을 넣어 양념을 버무린다. 이 익숙한 풍경 속에는 사실 한국인이 수백 년에 걸쳐 완성한 정교한 발효 과학이 숨어 있다. 김치는 단순히 채소를 절인 반찬이 아니라, 채소 속 유산균 발효와 젓갈·장류라는 이미 발효된 조미료가 만나 이중으로 완성되는 복합 발효식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김치를 담글 때 이미 ‘완성된 발효물’을 넣는다는 것이다. 새우젓, 멸치액젓은 그 자체로 몇 개월에서 몇 년을 숙성시킨 발효 생선이고, 지역에 따라 넣는 조선간장(집간장) 역시 오랜 발효를 거친 장류다. 즉, 김치는 “발효물 위에서 다시 발효가 일어나는” 독특한 식품이다. 이 글에서는 그 ‘발효 시너지’의 정체를 과학적 근거와 함께 풀어본다.

김치 발효를 이끄는 세 주역, 유산균

김치가 익어가는 과정은 젖산균(유산균)이 주도한다. 세계김치연구소 발효시스템연구단의 연구에 따르면, 김치 발효의 핵심을 담당하는 대표 미생물은 세 가지다.

첫째, 류코노스톡 메센테로이데스(Leuconostoc mesenteroides) 는 발효 초기에 활약하며, 만니톨(mannitol)과 초산을 만들어 단맛과 청량감—흔히 말하는 김치의 ‘시원한 맛’—을 높인다. 연구에서 이 균은 만니톨과 초산을 각각 최대 17%까지 증가시켰다.

둘째, 와이셀라 코레엔시스(Weissella koreensis) 는 오르니틴(ornithine)을 약 10% 더 많이 생성해, 짠맛과 함께 ‘코쿠미(kokumi)’라 불리는 깊고 풍부한 맛을 형성한다. 코쿠미는 특정 아미노산이 만들어내는 미각으로, 단맛·신맛·짠맛·감칠맛을 복합적으로 강화해 전체 맛의 조화를 끌어올린다.

셋째, 라틸락토바실러스 사케이(Latilactobacillus sakei) 는 발효 과정에서 젖산을 약 43% 더 많이 생성하고,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 등 아미노산을 최대 38%까지 증가시켜 깊고 풍부한 산미와 감칠맛을 강화한다.

즉, 김치 맛은 단순히 양념 배합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어떤 미생물이 언제 우점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세계김치연구소는 이 원리를 규명함으로써 “김치의 발효 맛을 과학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¹

젓갈은 왜 김치에 없어서는 안 되는가

김치를 담글 때 젓갈을 빼면 어떻게 될까? 신한대학교와 세종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젓갈 및 젓갈 대체 재료 첨가가 김치의 향기 특성에 미치는 영향”, Food Engineering Progress 25권 3호)은 이 질문에 과학적으로 답한다.²

논문에 따르면 젓갈이 빠진 김치는 담백하긴 하지만 “어딘가 밋밋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젓갈이 김치의 감칠맛을 향상하고 아미노산 함량을 높여 맛과 품질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Lee et al., 2021 인용). 젓갈은 발효 과정 중 미생물의 생육에 직접 영향을 미치며, 이를 통해 다양한 향미 성분을 만들어낸다.

특히 젓갈의 첨가량은 김치의 숙성 속도를 좌우하는 조절 장치다. 논문은 젓갈을 너무 많이 넣으면 김치가 빨리 익고, 적게 넣으면 늦게 익는다고 설명하며, 대략 2~4% 정도가 적당하다고 밝힌다. 젓갈이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발효의 ‘속도 조절 밸브’ 역할까지 한다는 뜻이다.

이 연구에서 흥미로운 발견도 있었다. 4℃에서 28일간 숙성시킨 결과, 젓갈을 넣은 김치가 pH 4.37, 산도 0.8%로 가장 오랫동안 알맞은 맛을 유지했다. 이는 젓갈 속 아미노산류가 pH 완충작용을 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반대로 젓갈을 넣지 않은 대조구는 완충작용이 부족해 가장 빠르게 산도가 높아졌다. 즉 젓갈은 감칠맛을 더할 뿐 아니라 김치가 급격히 시어지는 것을 늦춰 저장성까지 높이는 셈이다.

‘발효 시너지’의 정체: 감칠맛의 이중 증폭

여기서 김치와 장류·젓갈이 만나는 발효 시너지의 핵심이 드러난다. 감칠맛의 원천이 두 갈래에서 동시에 공급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유산균(특히 라틸락토바실러스 사케이)이 발효 중에 글루탐산 같은 감칠맛 아미노산을 새로 만들어낸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오랜 숙성을 거친 젓갈과 조선간장이 처음부터 풍부한 유리아미노산과 핵산 물질을 김치에 공급한다. 앞서 시리즈에서 살펴본 멸치액젓이 대표적인데, 18개월 숙성 시 유리아미노산 총량이 100ml당 9,000mg을 넘고 그중 글루탐산이 20% 이상을 차지한다.

즉 김치는 완성된 감칠맛(젓갈·장류) 위에 발효로 새로 생성되는 감칠맛(유산균) 이 겹쳐지는 구조다. 여기에 글루탐산(아미노산)과 핵산계 물질이 만나면 감칠맛이 몇 배로 증폭되는 ‘감칠맛 상승작용(synergy)’까지 일어난다. 이것이 잘 익은 김장 김치 특유의 깊고 복합적인 맛의 과학적 정체다.

지역이 만든 김치 맛 지도: 젓갈의 다양성

같은 김장 김치라도 지역마다 맛이 다른 이유의 상당 부분은 ‘어떤 젓갈을 쓰느냐’에서 비롯된다. 수협·해양수산부 자료를 종합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지도가 그려진다.³ ⁴

지역주로 쓰는 젓갈김치 맛 특징
서울·경기·강원새우젓깔끔하고 담백, 시원한 맛
전라도멸치젓, 갈치속젓, 조기젓진하고 깊은 감칠맛, 강한 풍미
경상도멸치젓, 갈치젓짭짤하고 묵직한 맛
충청도젓갈 비중 낮음심심하고 순한 맛

전라남도에서는 멸치젓과 갈치속젓처럼 진한 젓갈을 즐겨 써서 김치 맛이 깊고 묵직한 반면, 서울·경기권은 맑고 담백한 새우젓을 주로 사용해 시원한 맛을 낸다. 새우젓 중에서도 음력 5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오젓’, 6월의 ‘육젓’ 등 시기에 따라 등급과 맛이 갈리는데, 육젓이 특히 살이 통통해 김장용으로 귀하게 쓰인다.

이 밖에도 김치별로 어울리는 젓갈이 다르다. 깍두기에는 새우젓국·멸치젓·갈치속젓이, 백김치에는 맑은 새우젓국이, 갓김치에는 멸치젓·까나리액젓이 주로 쓰인다. 젓갈의 선택이 곧 그 집안, 그 고장의 김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알아두면 좋은 점과 주의사항

젓갈과 장류가 김치 맛의 핵심이지만, 논문은 몇 가지 유의점도 지적한다. 젓갈은 대체로 소규모 업체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많아 위생 관리가 중요하며, 채소의 질산염이 젓갈의 아민류와 결합하면 좋지 않은 물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²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젓갈을 적정량(2~4%) 사용하는 것이 맛과 안전 양쪽에서 바람직하다.

또한 김치와 젓갈, 장류 모두 나트륨 함량이 높은 발효식품이므로, 맛있다고 과하게 섭취하기보다 적정량을 즐기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젓갈을 쓰지 않는 채식 김치, 해산물·채소 추출물로 젓갈을 대체하는 연구도 활발한데, 위 논문은 발효가 충분히 진행되면 젓갈 유무에 따른 관능적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결과도 함께 제시했다.²

본 글의 영양·건강 관련 내용은 공개된 연구 자료에 기반한 것으로 특정 질병의 예방·치료 효과를 주장하지 않으며, 나트륨 섭취는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며: 발효가 발효를 만나 완성되는 맛

김장 김치는 단순한 저장 음식이 아니라, 이미 발효된 젓갈·장류라는 조미료와 새로 시작되는 유산균 발효가 만나 완성되는 이중 발효의 결정체다. 유산균이 시원한 맛과 감칠맛을 빚어내는 동안, 젓갈은 발효 속도를 조절하고 아미노산을 공급하며 김치의 깊이를 더한다. 지역마다 다른 젓갈이 저마다의 김치 맛 지도를 그려낸 것도 이 발효 시너지가 얼마나 섬세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김치 한 포기에 담긴 이 정교한 발효의 협주야말로, 한국 발효 문화가 도달한 하나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참고문헌

  1. 세계김치연구소, “김치의 깊은 맛, 미생물이 만든다 — 발효 미생물별 맛 형성 원리 구명,” 『식품외식경제』, https://www.foodbank.co.kr/news/articleView.html?idxno=67057
  2. 안선정·권태은, “젓갈 및 젓갈 대체 재료 첨가가 김치의 향기 특성에 미치는 영향,” 『Food Engineering Progress』 25권 3호, 2021, https://www.foodengprog.org/archive/view_article?pid=fep-25-3-228
  3. 해양수산부, “김장김치에 필수로 들어가는 젓갈! 지역별 이색 젓갈 파헤치기,” https://m.blog.naver.com/koreamof/222148803691
  4. 배석환, “김장 김치 맛을 좌우하는 젓갈 지역별 특색은 뭘까?,” 『수협신문』, https://www.suhyu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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