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 만들기부터 장 담그기까지, 전통 장류 제조의 전 과정

콩 한 줌이 된장과 간장이 되기까지

마트에서 된장 한 통을 집어 들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긴 시간을 잘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 한 그릇에는 콩을 삶는 겨울부터 장을 가르는 봄까지, 반년 가까운 기다림이 담겨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한국의 장 담그기는 2024년 12월 4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¹ 앞서 2018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데 이어, 이제는 세계가 인정한 문화가 된 것이다. 특히 메주 하나로 된장과 간장 두 가지를 동시에 만들고, 지난해 쓰고 남은 ‘씨간장’에 새 장을 더하는 방식은 한국만의 독창적인 문화로 평가받는다.¹

이 글에서는 콩 한 줌이 된장과 간장으로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각 단계에 숨은 과학적 원리와 실제 방법을 근거와 함께 차근차근 따라가 본다.

1단계. 메주 만들기 — 장맛의 8할이 여기서 결정된다

전통 장의 출발점은 메주다. 흔히 “장맛은 메주에서 판가름 난다”고 할 만큼 이 단계가 중요하다. 메주 만들기는 크게 네 과정으로 이뤄진다.

먼저 콩 불리기와 삶기다. 메주콩(백태)을 하루에서 이틀간 물에 충분히 불린 뒤, 손으로 눌러 으깨질 만큼 푹 삶는다. 콩의 두세 배 되는 물을 붓고 오랜 시간 뭉근히 삶는 것이 핵심이다. 콩이 덜 삶기면 발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다음은 찧기와 성형이다. 삶은 콩을 절구 등에 찧어 으깬 뒤 벽돌 모양으로 단단하게 빚는다. 콩을 으깨는 이유는 미생물이 파고들 표면적을 넓히기 위해서다.

세 번째는 **말리기와 띄우기(발효)**다. 빚은 메주를 짚으로 묶어 따뜻하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 매달아 발효시킨다. 이 과정이 한두 달 걸린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장맛의 과학적 뿌리다. 메주 표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곰팡이(아스페르길루스 등)와 세균(바실러스균)이 효소를 분비하기 시작한다. **바실러스균은 단백질 분해 효소(프로테아제)를 내어 콩의 거대한 단백질을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으로 잘게 끊어낸다.**² 이렇게 생긴 아미노산이 훗날 장의 감칠맛이 된다. 즉 메주를 띄우는 것은 단순히 말리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이 콩을 ‘소화 가능한 감칠맛 덩어리’로 바꾸는 사전 준비 작업인 셈이다.

좋은 메주 고르는 법: 겉은 잘 마르고 속은 연한 것이 좋다. 표면에 하얗고 노란 곰팡이가 슬어 있으면 발효를 돕는 좋은 균이지만, 검은곰팡이나 푸른곰팡이는 해로운 균이므로 솔로 문질러 씻어내야 한다.³

2단계. 재료와 도구 준비 — 소금·물·항아리의 조건

메주가 준비됐다면 장 담그기에 필요한 재료를 갖춘다. 준비물은 의외로 단순하다. 메주, 소금, 물, 숯, 건고추, 그리고 항아리가 전부다.³

각 재료에는 이유 있는 조건이 붙는다. 소금은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을 쓰되, 1년 이상 묵혀 간수를 뺀 것을 사용한다. 간수가 남아 있으면 쓴맛이 나기 때문이다. 항아리는 지나치게 번쩍이거나 검은빛이 강한 것을 피해야 한다. 화학유약(광명단)을 쓴 항아리는 숨을 쉬지 못해 발효를 방해한다. 손으로 두드렸을 때 맑은 소리가 나는 것이 좋다.³

숯과 건고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숯은 불순물을 흡착하고 잡균을 억제하며, 붉은 건고추는 액운을 막는다는 의미와 함께 살균 효과를 기대하는 전통적 지혜다.

항아리는 반드시 소독한다. 굵은 소금으로 안쪽을 문지른 뒤 씻어내고, 마지막에 팔팔 끓인 물을 부어 헹군 다음 엎어 말린다.³

3단계. 장 담그기 — 소금물의 ‘황금 비율’과 시기

이제 본격적인 장 담그기다. 핵심은 **소금물의 농도(염도)**와 담그는 시기다.

소금물 만들기부터 보자. 소금과 물의 비율은 부피 기준 약 3:10이 적당하다.³ 정확한 염도를 재는 전통적 방법이 흥미로운데, 소금물에 달걀을 띄웠을 때 수면 위로 떠오른 부분이 100원 동전(혹은 500원 동전) 넓이만큼 보이면 알맞은 농도다.³ 별도의 염도계 없이도 조상들이 써온 지혜다. 소금물은 하루 전에 미리 풀어두었다가, 바닥에 가라앉은 불순물은 버리고 맑은 윗물만 사용한다.

메주 씻기는 살살 해야 한다. 너무 박박 씻으면 표면의 좋은 균이 떨어져 나가므로 살짝 헹구듯 씻는다.³

담그기 자체는 간단하다. 소독한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붓는데, 메주와 소금물의 비율은 부피 기준 약 1:1이 적당하다. 특히 통풍이 어려운 아파트에서 담글 때는 염도를 낮추지 말고 1:1을 지켜야 실패 확률이 낮다.³ 마지막으로 숯과 건고추 몇 개를 띄우고 뚜껑을 덮으면 담그기가 끝난다. 이후 햇볕 잘 들고 바람 통하는 곳에 두고, 맑은 날 낮에는 뚜껑을 열어 볕을 쬐어준다.³

시기도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장은 **음력 정월(양력 2~3월경)**에 담근다. 기온이 낮아 잡균 번식이 억제되고, 천천히 발효되면서 깊은 맛이 들기 때문이다.

4단계. 장 가르기 — 하나의 메주가 둘로 나뉘는 순간

장 담그기의 백미이자 한국 장 문화의 독창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단계가 바로 장 가르기다.

장을 담근 지 40~60일(보통 60~90일)이 지나면 항아리 속 메주를 꺼낸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항아리가 된장과 간장 두 가지로 나뉜다. 항아리에 남은 검은 액체가 간장, 건져낸 메주 건더기를 곱게 치댄 것이 된장이다.³

방법은 이렇다. 항아리 속 메주를 꺼내 손으로 곱게 치대는데, 너무 되면 남은 장물을 부어가며 농도를 맞춘다. 메주가 곱게 풀리면 별도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는다. 이것이 된장이다. 남은 맑은 장물은 다시 달여서 간장으로 완성한다. 이후 맑은 날엔 볕을 쬐고 해가 지면 덮어주기를 반복하며 한 달가량 더 숙성시키면 비로소 먹을 수 있다.³

장 가르는 시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점도 알아둘 만하다. **일찍 가르면 간장이 싱겁고, 늦게 가르면 된장 맛이 약해진다.**³ 그래서 집집마다 원하는 맛에 따라 시기를 조절하는데, 이 미묘한 판단이 곧 ‘손맛’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원리 — ‘선택적 발효’

메주부터 장 가르기까지, 복잡해 보이는 이 전 과정을 하나로 꿰는 원리가 있다. 바로 소금을 이용한 선택적 발효다.

콩을 그냥 두면 썩는다. 하지만 소금물이라는 고염 환경을 만들면, 부패균은 억제되고 이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유익한 발효균만 활동하게 된다. 여기에 메주 단계에서 미리 자리 잡은 곰팡이·바실러스균의 효소가 더해져, 콩 단백질은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으로, 전분은 단맛 나는 당으로 분해된다.²

즉 전통 장 제조의 모든 단계—콩 삶기(미생물이 먹기 좋게), 메주 띄우기(효소 준비), 소금물(선택적 환경 조성), 긴 숙성(분해와 숙성)—는 미생물과 효소가 최선의 일을 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정교한 과정인 것이다. 유네스코가 이 문화를 “지식과 기술, 신념을 아우르는 전통”이라 표현한 이유가 여기 있다.¹

마치며 — 기다림이 완성하는 맛

전통 장 담그기는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정확한 준비와 오랜 기다림의 예술이다. 좋은 메주를 고르고, 소금물의 농도를 맞추고, 때를 기다려 담그고, 알맞은 시기에 가르는 것. 그 사이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콩을 감칠맛의 보물로 바꿔놓는다.

콩 한 줌에서 시작해 된장과 간장 두 가지로 완성되기까지, 반년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이 깊은 맛이야말로 세계가 인정한 한국 발효 문화의 정수다. 다가오는 정월, 작은 항아리 하나로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의 제조 방법과 비율은 전통적·일반적 기준으로, 재료·기후·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장을 담글 때는 위생 관리에 유의하고, 특히 검은곰팡이 등 유해균이 발견되면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1. 유네스코한국위원회 / 연합뉴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2024.12) — 2018년 국가무형유산, 2024년 유네스코 등재, 메주로 된장·간장 동시 제조 및 씨간장(겹장)의 독창성. https://unesco.or.kr/241205_03/ · https://www.yna.co.kr/view/AKR20241105019851005
  2. “된장 발효의 과학”(생명과학 세포·물질대사 관점) 및 관련 자료 — 바실러스균의 프로테아제가 콩 단백질을 펩타이드·아미노산으로 분해. https://m.blog.naver.com/genetic2002/224193914374 / 한국균학회지 「조선전통 식품으로 메주발효」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199503040109839.pub
  3. 이상희, “[된장 담그기 도전해볼까] 메주·소금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농민신문』(2017.2.20) — 메주 고르기, 항아리·소금 조건, 소금물 3:10 비율과 달걀 염도 측정법, 메주:소금물 1:1, 장 가르기(40~60일) 방법. https://www.nongmin.com/article/20170220079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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