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속 된장이 익어가는 그 조용한 시간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콩 한 알이 감칠맛 가득한 된장으로 바뀌는 ‘보이지 않는 공장’의 과학을 들여다봅니다.

된장은 사실 ‘살아 있는’ 음식이다
냉장고 문을 열면 늘 그 자리에 있는 된장. 우리는 무심코 찌개에 한 숟갈 풀지만, 사실 된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세하게 변하고 있는 살아 있는 발효식품입니다. 갓 담근 된장을 1년 뒤, 3년 뒤에 맛보면 색도 향도 맛도 완전히 다릅니다. 왜일까요?
답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에 있습니다.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고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키는 이 모든 과정은, 현대 생명공학의 눈으로 보면 놀랍도록 정교한 미생물 배양 공정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볏짚으로 메주를 묶어 매달아 둔 행위조차, 알고 보면 특정 미생물을 콩에 접종하는 과학적 절차였던 셈이지요.
이 글에서는 된장이 익어가는 동안 항아리 속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미생물이 어떤 순서로 등장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실제 연구 결과를 근거로 풀어보겠습니다.
주연 배우들: 된장을 만드는 미생물 군단
된장 발효는 한 종류의 미생물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곰팡이·세균·효모가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아 릴레이처럼 이어달리기를 합니다. 연구자들이 실제 된장 시료의 미생물 군집을 유전자 분석으로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주역들이 확인되었습니다.
먼저 곰팡이입니다. 김태완 등(2009)이 여러 된장 시료의 미생물 군집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Aspergillus oryzae(황국균, 누룩곰팡이), Mucor plumbeus, Debaryomyces hansenii(효모) 등이 가장 흔하게 발견되었습니다.¹ 특히 황국균으로 불리는 Aspergillus oryzae는 전분과 단백질을 분해하는 강력한 효소를 만들어내는 균으로, 술·간장·된장 발효의 핵심 곰팡이입니다.²
다음은 발효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바실러스균입니다. 정식 명칭은 Bacillus subtilis, 우리말로는 **고초균(枯草菌)**이라 부릅니다. ‘마른 풀에서 발견되는 균’이라는 뜻인데, 이름 그대로 볏짚과 토양, 식물 표면에 흔히 존재하는 세균입니다.³ 콩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이 균이 메주와 된장 발효에 결정적으로 관여합니다.⁴
여기에 더해 여러 유산균과 세균이 함께 삽니다. 정원영 등(2016)의 연구에서는 된장에서 Bacillus, Enterococcus, Lactobacillus, Tetragenococcus, Staphylococcus 등 다양한 세균이 검출되었습니다.⁵ 특히 Tetragenococcus 같은 내염성(염분에 강한) 세균은 짠 소금물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발효 후반부의 풍미를 만듭니다.
정리하면, 곰팡이가 강력한 분해 효소를 준비하고, 바실러스균이 단백질을 잘게 부수며, 유산균과 내염성 세균이 맛과 향을 다듬는 삼각 협업 체계가 된장 한 항아리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구분 | 대표 미생물 | 하는 일 | 발효 단계 |
|---|---|---|---|
| 곰팡이 | Aspergillus oryzae (황국균) | 전분·단백질 분해 효소를 대량 생산 | 메주 띄우기(초기) |
| 세균(주역) | Bacillus subtilis (고초균/바실러스균) | 프로테아제로 단백질을 잘게 분해 | 메주~된장 전 과정 |
| 내염성 세균 | Tetragenococcus, Enterococcus | 짠 환경에서 살아남아 풍미 형성 | 소금물 숙성기(후기) |
| 효모 | Debaryomyces hansenii | 향미 성분 생성, 풍미의 복합성 부여 | 숙성 전반 |
곰팡이가 ‘효소 공장’을 세우고 → 바실러스균이 ‘본격 분해’를 하고 → 내염성 세균과 효모가 ‘맛을 다듬는’ 릴레이 구조입니다.
핵심 메커니즘 ①: 단백질을 미리 소화해 두는 ‘선소화’
된장 발효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분해입니다. 콩은 흔히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릴 만큼 단백질이 풍부하지만, 생콩의 단백질은 분자 구조가 너무 크고 복잡해서 우리 몸이 그대로 흡수하기 어렵습니다.
| 상태 | 소화 흡수율 | 이유 |
|---|---|---|
| 생콩 | 약 55% | 단백질 구조가 크고 복잡해 절반가량 흡수 못 함 |
| 삶은 콩 | 약 65% | 열로 구조가 일부 풀려 소화가 조금 쉬워짐 |
| 된장(발효) | 약 85% | 미생물이 미리 분해(선소화)해 먹자마자 흡수 |
※ 수치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어 경향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서 미생물이 등장합니다. 바실러스균과 곰팡이는 콩의 영양분을 자기 에너지로 쓰기 위해 **프로테아제(protease)**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를 세포 밖으로 뿜어냅니다.³ ⁴ 이 효소가 큰 단백질 덩어리를 가위처럼 잘라냅니다. 화학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단계를 거칩니다.
단백질 → (프로테아제) → 펩타이드 → (펩티다제) → 아미노산
즉 거대한 단백질이 중간 크기인 펩타이드로 잘리고, 다시 더 작은 아미노산으로 완전히 분해되는 것입니다.³ 놀라운 점은 이것이 우리 위장이 할 일을 미생물이 미리 대신 해준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 **선소화(pre-digestion)**라고 부릅니다.
이 효과는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소화 흡수율을 비교하면 생콩은 약 55%, 삶은 콩은 약 65%인 반면, 발효를 거친 된장은 약 85%에 이릅니다.³ 미생물이 항아리 속에서 이미 절반 이상의 소화 작업을 끝내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먹자마자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만 이 흡수율 수치는 자료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경향성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핵심 메커니즘 ②: 감칠맛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된장 특유의 깊고 구수한 맛, 이른바 ‘감칠맛(umami)’의 정체도 이 분해 과정에 있습니다.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쪼개질 때 생성되는 아미노산 중 하나가 **글루탐산(glutamic acid)**입니다.³ 이 글루탐산이 바로 우리가 감칠맛으로 느끼는 그 맛의 핵심 물질입니다. 흔히 조미료로 알려진 MSG가 글루탐산의 나트륨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⁶ 즉 된장은 발효 과정에서 천연 MSG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그래서 발효가 잘 될수록,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충분히 분해될수록 감칠맛이 깊어집니다. 곰팡이가 만드는 효소(제국 과정의 국균 작용)가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 성분을 생성·분비한다는 것은 여러 특허·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⁷ 잘 익은 된장이 그냥 짜기만 한 게 아니라 ‘구수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핵심 메커니즘 ③: 색이 변하는 이유 — 마이야르 반응
갓 담근 된장은 밝은 노란빛이지만, 2년 정도 숙성되면 진한 갈색으로 변합니다. 이 색 변화의 주역은 미생물이 아니라 화학 반응, 바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입니다.³
마이야르 반응은 아미노산과 당(糖)이 만나 갈색 색소와 향미 물질을 만들어내는 반응으로, 고기를 구울 때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며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된장에서는 발효로 생긴 아미노산과 당이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반응하면서 색이 짙어지고 향이 깊어집니다. 오래 묵은 된장일수록 색이 진하고 풍미가 복합적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숙성이 길어지면 아미노산의 일부가 암모니아로 분해되기도 하는데, 이것이 오래된 된장 특유의 톡 쏘는 향과 개성 있는 풍미를 완성합니다.³ (같은 콩과 소금으로 담근 장이 숙성 기간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원리는, 궁중에서 청장·중장·진장을 구분해 쓴 지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별도의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발효와 부패는 무엇이 다른가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발효도 부패도 결국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것인데, 무엇이 이 둘을 가를까요?
기준은 딱 하나, 인간에게 유익한가 아닌가입니다.³ 발효(fermentation)는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아미노산·유기산·비타민처럼 우리 몸에 이롭고 맛을 좋게 하는 물질이 생기는 과정입니다. 반면 부패(putrefaction)는 유해균이 단백질 등을 분해해 독소나 암모니아·황화수소 같은 악취 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지요.
| 구분 | 발효 (Fermentation) | 부패 (Putrefaction) |
|---|---|---|
| 주도 미생물 | 유익균 (바실러스·유산균 등) | 유해균 |
| 생성물 | 아미노산·유기산·비타민 | 독소·암모니아·황화수소 |
| 결과 | 풍미↑, 영양↑, 흡수율↑ | 악취, 인체 유해 |
| 가르는 기준 | “인간에게 유익한가?” — 단 하나의 기준 |
그래서 된장을 담글 때 소금 농도, 온도, 위생 관리가 그토록 중요합니다. 소금은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하면서 발효에 이로운 내염성 미생물만 살아남게 하는 ‘선별 장치’ 역할을 합니다. 조건이 어긋나면 같은 항아리가 발효가 아니라 부패의 길로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온도와 습도가 발효에 미치는 구체적 영향은 이 시리즈의 별도 글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오래 묵은 된장이 몸에 좋다는 말의 근거
“묵은 된장이 약이 된다”는 옛말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발효가 진행되면서 콩의 이소플라본(isoflavone)이 우리 몸이 흡수하기 쉬운 아글리콘(aglycone) 형태로 전환되고, 숙성이 길수록 이 활성 성분의 함량이 증가하는 경향이 보고되어 있습니다.³
된장의 기능성에 관한 연구도 꾸준합니다. 박건영 등(1996)의 연구는 재래식으로 옹기에서 발효시킨 된장의 항돌연변이·항발암 효과를 보고했고,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펩타이드와 이소플라본이 그 활성과 관련 있는 것으로 논의되어 왔습니다.⁸ 다만 이런 기능성 연구의 상당수는 실험실 수준이거나 동물 실험 단계인 경우가 많으므로, “된장을 먹으면 암이 낫는다”는 식의 과장된 해석은 경계해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발효가 만들어내는 성분에 유익한 잠재력이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항아리 속 작은 우주
콩 단백질 → (곰팡이·바실러스균의 효소) → 아미노산 → (감칠맛 형성 + 당과 결합) → 마이야르 반응 → 색·향·기능성 완성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된장의 숙성이란, 곰팡이와 바실러스균이 만든 효소가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감칠맛을 빚어내고, 그 아미노산과 당이 마이야르 반응으로 색과 향을 완성하며, 그 과정에서 흡수율과 기능성 성분까지 높아지는 미생물과 화학의 총체적 합작입니다.
된장 한 항아리는 그야말로 작은 우주입니다. 다음에 된장찌개를 끓이며 한 숟갈 뜰 때, 그 안에서 수년간 쉬지 않고 일해 온 미생물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한 번쯤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우리 조상들이 경험과 직관으로 완성한 이 발효의 기술이, 현대 과학의 잣대로 봐도 얼마나 정교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왕실이 이 발효의 원리를 미생물이라는 개념 없이도 경험으로 터득해 청장·진장을 구분해 쓴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궁중 수라상에 오른 장류: 조선왕조실록 속 장 담그기 기록]을 함께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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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및 출처
- Kim, T. W. et al. (2009), “Analysis of microbial communities in doenjang, a Korean fermented soybean paste,” International Journal of Food Microbiology. — 된장 곰팡이 군집에서 Aspergillus oryzae, Mucor plumbeus, Debaryomyces hansenii 등이 우점종으로 확인.
- 이래 외(2016), 「국내에서 분리된 황국균을 활용한 된장 제조 및 특성 분석」, Korean Journal of Food Science — Aspergillus oryzae의 protease 활성과 된장 품질.
- 「된장 발효의 과학적 원리(바실러스균과 단백질 분해)」, 생명과학 교육 자료. — 고초균의 특성, 프로테아제 분해 단계, 소화 흡수율(생콩 55%·삶은콩 65%·된장 85%), 마이야르 반응, 발효/부패 구분.
- 「메주 제조 시 Bacillus subtilis의 첨가가 재래식 된장 발효에 미치는 영향」, 이창호(2008), KCI 등재 논문.
- Jung, W. Y. et al. (2016), 한국 전통 된장의 세균 군집 분석 — Bacillus, Enterococcus, Lactobacillus, Tetragenococcus 등 검출.
- 「감칠맛의 정체」, 조선일보 헬스 및 나무위키 ‘감칠맛’ — 글루탐산과 감칠맛(umami)의 관계.
- 한국특허 KR100947908B1 「장류 발효를 활용한 감칠맛 증강」 — 국균 작용에 의한 단백질 분해와 정미 성분 생성.
- Park, K. Y. et al. (1996), 「된장의 항돌연변이 및 항발암효과」, Journal of Cancer Prevention — 재래식 된장의 기능성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