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은 하늘이 낸다”는 말의 진짜 의미
옛 어른들은 장맛이 잘 나면 “하늘이 도왔다”고 했다.
여기서 ‘하늘’은 다름 아닌 날씨—온도와 습도다.
같은 메주, 같은 소금을 써도 그해 기후에 따라 장맛이 달라지는 것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다.
발효를 이끄는 것은 미생물이고, 미생물의 활동은 온도와 습도에 절대적으로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메주를 띄우는 단계부터 장을 담가 숙성시키는 단계까지,
온도와 습도가 발효에 어떻게 작용하며 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미생물학적 근거와 함께 정리한다.
원리를 이해하면 왜 정월에 장을 담그고, 왜 볕 좋은 날 뚜껑을 열어주는지가 자연스럽게 납득된다.

왜 온도와 습도가 결정적인가: 미생물과 효소의 조건
발효란 결국 미생물이 자신의 효소로 콩의 단백질과 전분을 분해하는 과정이다. 이 미생물과 효소는 각자 활발하게 작동하는 최적 온도 구간이 있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활동이 느려지고, 너무 높으면 유해균이 함께 번식하거나 발효가 과도하게 진행돼 변질된다. 습도 역시 미생물의 생육과 곰팡이 번식에 직접 영향을 준다.
장류 발효에 관여하는 대표 미생물은 두 갈래다. 하나는 황국균(Aspergillus oryzae) 등 곰팡이류로, 주로 28~30℃ 부근에서 잘 자란다. 다른 하나는 된장·간장 발효의 핵심인 고초균(바실러스, Bacillus subtilis) 으로, 최적 생육 온도가 **약 38~43℃**로 알려진 호기성·내열성 세균이다.¹ ² 두 미생물의 선호 온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뒤에 나올 관리법의 핵심이 된다.
1단계: 메주 띄우기 — 온도·습도 관리의 승부처
장 담그기에서 온습도 관리가 가장 예민하게 요구되는 단계가 메주 발효(띄우기) 다. 이 단계에서 콩에 유익한 미생물을 골고루 배양해야 이후 장맛이 결정된다.
전통 및 실무 자료를 종합하면, 메주를 띄우는 발효실의 기준은 대체로 품은 온도 30~40℃, 습도 60% 안팎으로 조절하는 것이다.³ 앞서 설명했듯 이 구간은 황국균(28~30℃)과 고초균(30~60℃)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범위다.
여기서 초보자가 알아둘 실패 신호가 있다. 전통장 자료에 따르면 **실내 온도가 너무 낮으면 메주 속까지 발효가 안 되고 노란 곰팡이가 속에 피며, 반대로 너무 높으면 붉은 곰팡이가 핀다.**⁴ 즉 온도가 낮아도 높아도 문제가 생긴다. 습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유해 곰팡이와 잡균이 번식하고, 너무 낮으면 미생물이 자라지 못해 메주가 마르기만 한다.
따라서 메주 띄우기는 “따뜻하되 과하지 않게, 촉촉하되 눅눅하지 않게” 가 원칙이다. 실무에서는 온도와 습도가 잘 맞으면 하루 반나절이면 곰팡이(균사)가 피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단계: 왜 하필 ‘정월(추운 겨울)’에 장을 담글까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장을 우려내는 단계로 넘어가면, 이번엔 오히려 ‘낮은 온도’ 가 중요해진다. 전통적으로 장 담그기를 음력 정월(한겨울)에 하는 데에는 명확한 과학적 이유가 있다.
추운 날씨는 잡균과 유해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한다. 소금물에 메주를 담근 초기에 잡균이 자라면 장 전체가 변질될 위험이 크다. 낮은 기온에서 시작해 서서히 봄기운이 오르며 발효가 진행되면, 유익한 발효는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되 잡균 오염은 최소화된다. 즉 메주 띄우기가 ‘따뜻함’을 요구했다면, 장 담그기 초기는 ‘서늘함’이 안전판인 셈이다.
3단계: 숙성 온도가 만드는 맛의 차이
장을 가른 뒤 된장을 숙성시키는 단계에서도 온도는 최종 맛을 좌우한다. 숙성 온도에 따른 된장 품질 변화는 여러 연구로 확인되어 왔다(Kim MS 등, “발효 온도가 된장 품질에 미치는 영향”, 2008).⁵
일반적인 경향은 이렇다. 저온에서 천천히 숙성한 된장은 상온 숙성에 비해 pH가 높게 유지되고(천천히 시어짐) 신맛이 덜하며 은은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반대로 고온에서 빠르게 숙성하면 발효가 빨라 감칠맛이 빨리 올라오지만, 신맛과 변질 위험도 함께 커진다. 실제로 숙성 장소(온도)에 따라 전통 된장의 품질 특성과 미생물 군집이 달라진다는 연구도 보고되었다(이수연 등, 2022).⁶ 즉 ‘어디서 어떤 온도로 익히느냐’가 곧 장의 개성이 된다.
지역 기후가 장맛을 가른다: 순창의 사례
이 모든 원리를 잘 보여주는 것이 지역별 장맛의 차이다. 발효 명산지로 유명한 순창 지역의 메주 발효 환경을 조사한 연구는 흥미로운 데이터를 남겼다. 순창의 된장·고추장 메주 발효 중 온도는 15~20℃ 구간의 빈도가 약 24%, 습도는 상대습도(RH) 80~90% 구간의 빈도가 약 30% 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⁷
이는 특정 지역의 고유한 기후가 그곳 미생물 군집과 발효 양상을 형성하고, 결과적으로 그 지역 특유의 장맛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시사한다. “장맛은 하늘이 낸다”는 말이 지역 기후의 과학으로 재해석되는 대목이다.
실전 관리 요령 정리
지금까지의 원리를 실제 관리법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메주 띄우기 단계에서는 발효실을 약 30℃ 안팎의 따뜻한 온도와 60% 내외의 적정 습도로 유지하되, 노란 곰팡이(저온)나 붉은 곰팡이(고온) 같은 신호를 관찰하며 조절한다. 장 담그기는 잡균 번식이 억제되는 추운 시기(정월) 에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숙성 단계에서는 맑고 볕 좋은 날 낮에 항아리 뚜껑을 열어 햇볕과 바람을 쐬어 표면의 과습을 막고 곰팡이를 예방하되, 해 질 무렵과 비 오는 날에는 반드시 닫는다. 특히 고온다습한 장마철에는 습도 관리가 최우선이며,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한다.
알아두면 좋은 점
여기서 제시한 온도·습도 수치는 전통 방식과 여러 연구에 기반한 일반적 기준으로, 콩의 상태·소금 농도·용기·지역 기후에 따라 최적 조건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가정에서는 발효실 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하기 어려우므로,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미생물이 보내는 신호(색·냄새·질감)를 관찰하며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상태가 명백히 이상한(심한 악취, 유해 곰팡이) 발효물은 섭취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마치며: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의 협업
장 담그기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의 협업이며, 온도와 습도는 그 협업의 언어다. 메주를 띄울 땐 따뜻하게, 장을 담글 땐 서늘하게, 익힐 땐 볕과 바람으로—이 리듬은 각 단계마다 다른 미생물에게 최적의 무대를 마련해 주는 정교한 조율이다. 조상들이 경험으로 체득한 이 지혜가 오늘날 미생물학과 발효 과학으로 하나씩 증명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한국 발효 문화가 지닌 깊이를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 “고초균(바실러스 서브틸리스)—메주 곰팡이,” 네이버 블로그 (고초균 약 40℃ 호기성·내열성), https://blog.naver.com/pirigoal/80202028612
- “청국장 띄우기 — 고초균의 최적 생육 온도 38~43℃,” 귀농 커뮤니티 자료, https://m.cafe.daum.net/refarm/QHc/7770
- “메주 띄우기 — 품은 온도 30~40℃, 습도 60%, 황국균 28~30℃·고초균 30~60℃,”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jsj4002/221786465964
- “메주 성형과 발효방법 — 실내온도가 낮으면 노란 곰팡이, 높으면 붉은 곰팡이,” 전통장자료실, https://crlove.co.kr/board/bbs/board.php?bo_table=data&wr_id=4
- Kim MS, Kim EM, Chang KS, “Effect of fermentation temperature on quality of Doenjang,” Journal of Agricultural Science, 35, 1-9 (2008)
- 이수연 외, “숙성 장소에 따른 전통 된장의 품질 특성 및 미생물군집 비교,”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 29권 7호, 2022, https://www.ekosfop.or.kr/archive/view_article?pid=kjfp-29-7-1059
- “순창지역 메주 발효 중 미생물과 효소역가의 변화(온도·습도 빈도 조사 포함),” 『한국식품과학회지』, https://www.koreascience.or.kr/article/JAKO19981192015547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