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장과 왜간장의 차이: 한국 간장의 역사적 분화

마트 간장 코너에 서면 다들 잠깐 멈칫하는 이유

마트 간장 코너에 가보면 국간장, 양조간장, 진간장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정작 어떤 걸 골라야 할지 헷갈려서 한참 서 있게 됩니다. 이 혼란은 사실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간장 안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조선의 전통 방식과, 백 년 남짓밖에 안 된 일본식 제조법이 뒤섞여 있고, 이 두 갈래가 만들어낸 역사적 분화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마트 진열대 앞에서 매번 같은 혼란을 반복하게 됩니다. 오늘은 조선장과 왜간장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이 둘이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갈라져 나왔는지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조선간장이란 무엇인가: 콩으로만 만든 순수 발효의 산물

조선간장은 콩으로만 쑨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켜 만든 재래식 간장을 가리키며, 흔히 ‘집간장’ 혹은 국이나 나물에 주로 쓰인다는 이유로 ‘국간장’이라 불립니다(foodnmed.com, 2023). 이 방식은 앞선 글들에서 다룬 씨간장이나 정월대보름 무렵 장 담그기 풍습과 정확히 같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메주를 쑤고 소금물에 담가 몇 달간 발효시킨 뒤, 액체 부분을 걸러내어 만드는 조선간장은 콩과 소금, 물,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발효의 결과물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이 침장(沈醬) 방식이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임을 밝히고 있는데(encykorea.aks.ac.kr), 조선간장은 이 오랜 역사를 오늘날까지 가장 원형에 가깝게 잇고 있는 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간장은 언제, 어떻게 들어왔을까: 일제강점기의 흔적

‘왜간장’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역사를 말해줍니다. 일본식 양조 기술이 한반도로 넘어와 간장 공장이 세워지면서 이렇게 만들어진 일본식 간장을 사람들이 ‘왜간장’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 방식이 오늘날 ‘양조간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자리 잡았습니다(다음뉴스, 2025.07.05). 실제로 경남 마산에는 1910년대에 일본인이 세운 간장 공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확인되는데, 이 공장에서 생산된 간장이 바로 초창기 왜간장의 원형이었습니다(페이스북 발효 전문가 커뮤니티 자료, 마산 지역사 기록). 흥미로운 점은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조선인들이 이 새로운 간장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초연당 블로그, 2023). 오랫동안 콩으로만 담가 먹던 조선간장의 맛과 냄새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일본식 양조간장은 낯선 이물감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값이 저렴했던 왜간장, 즉 양조간장은 점차 한국인의 식탁 깊숙이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산분해간장이라는 세 번째 갈래

간장의 역사적 분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함께 짚어야 할 것이 바로 ‘산분해간장’입니다. 이는 콩 단백질(대두박)을 염산으로 빠르게 가수분해한 뒤 중화시켜 만드는 방식으로, 발효 과정 없이도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간장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일송뉴스, 산분해간장 특집 기사). 이 방식이 일제강점기 당시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는 분석도 있는데(일송뉴스), 실제로 1930년대 이후 산분해간장 제조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됩니다(페이스북 식품 전문가 커뮤니티 지적 사항). 시중에서 흔히 접하는 ‘진간장’은 대체로 이 양조간장과 산분해간장을 혼합해 진하게 만든 제품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나무위키 간장 문서). 즉 오늘날 마트에서 마주치는 간장의 지형도를 정리하면, 조선간장(국간장)은 콩으로만 발효시킨 재래식 간장, 양조간장(왜간장)은 일본식 발효 기술로 만든 간장, 진간장은 이 양조간장에 산분해간장을 더해 만든 혼합형 간장이라는 세 갈래로 나뉘는 셈입니다.

발효냐 분해냐: 시간이 만드는 맛의 차이

조선간장과 왜간장, 그리고 산분해간장을 가르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결국 ‘시간’입니다. 조선간장과 양조간장은 모두 미생물의 발효 작용을 거쳐 만들어지지만, 조선간장은 콩만을 원료로 삼아 최소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천천히 발효시키는 반면, 일본식 양조간장은 밀과 콩을 함께 사용하고 균주를 인위적으로 배양해 발효 기간을 상대적으로 단축시키는 방식을 취합니다. 반면 산분해간장은 발효라는 과정 자체를 건너뛰고 화학적 분해를 통해 간장의 맛을 흉내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감칠맛과 향에서 전통 방식과 뚜렷한 차이가 난다는 점이 여러 식품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습니다(네이버 블로그, 식품 안전 콘텐츠, 2023). 최근에는 이 산분해간장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3-MCPD’라는 물질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6개월 이상 충분히 숙성되는 한식간장(조선간장)과 양조간장에서는 이 물질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는 점이 방송 보도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연합뉴스 자막뉴스, 2026.01.23; 다음뉴스, 2025.07.16). 이는 단순히 “옛것이 좋다”는 감성적 주장이 아니라, 충분한 발효 시간이 실제로 더 안전하고 건강한 간장을 만든다는 과학적 근거로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름이 만든 오해,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조선장’과 ‘왜간장’이라는 이름은 사실 순수한 학술 용어가 아니라,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붙은 구분법입니다. 하지만 이 이름표 안에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발효의 전통과, 근대화와 식민지 경험 속에서 새롭게 유입된 산업적 제조법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역사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트에서 국간장, 양조간장, 진간장을 고를 때 이 배경을 알고 고른다면, 단순한 소비 행위가 요리 재료 하나에 담긴 한국 근현대사를 되짚어보는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세 가지 간장이 실제로 국물 요리, 나물 무침, 조림 등 각각의 요리에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지, 그리고 왜 어떤 요리에는 반드시 국간장을 써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1. 다음뉴스, “[알쏭달쏭 유통] 간장에 국적 왜 있을까? ‘조선간장’과 ‘왜간장'”, 2025.07.05
  2. foodnmed.com, “조선간장과 왜간장의 차이를 아시나요?”, 2023
  3. 초연당 공식 블로그(choyeondang.tistory.com), “헷갈리는 간장 제대로 알고 먹어요”, 2023
  4. 일송뉴스(ilsongnews.com), “일본의 ‘산분해 간장’ 한국인의 식탁을 점령하다”
  5. 나무위키, “간장” 문서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장 담그기” 항목
  7. 연합뉴스 자막뉴스, “간장에서 유해물질이?…’3-MCPD’가 뭐길래”, 2026.01.23
  8. 다음뉴스, “발암물질이라는 ‘3-MCPD’ 뭐길래…’산분해 간장’ 제조 방식”, 2025.07.16
  9. 페이스북 식품 발효 전문가 커뮤니티 게시글, 산분해간장 도입 시기 관련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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